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현대모비스를 처음 들여다봤을 때, 저는 그냥 현대차 부품이나 납품하는 묵직한 대기업 계열사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CES 2026에서 공개된 아틀라스 액추에이터와 M.Vics 7.0 콕핏 기술을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회사가 자동차 부품사인지, 소프트웨어 기업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2025년 매출 61조 1,181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 뒤에 숨어 있는 체질 변화가 훨씬 더 중요한 이야기였습니다.
저평가 국면에서 제가 확인한 것들
일반적으로 대형 제조주는 주가 변동이 느리고 재미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현대모비스 주가가 지배구조 이슈와 전동화 원가 부담으로 짓눌려 있던 시기에, 저는 오히려 재무 구조를 뜯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숫자가 PBR 0.83이었습니다.
PBR(주가순자산비율)이란 주가가 기업의 순자산 대비 얼마나 비싸게 혹은 싸게 거래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PBR이 1 미만이라는 건, 지금 이 회사를 통째로 사는 것이 장부상 자산을 사는 것보다도 싸다는 뜻입니다. 그 상황에서 제가 주목한 건 A/S 사업부였습니다.
A/S 부문은 매출 13조 3,180억 원에 영업이익률 약 25%를 기록하는 현금 창출 엔진입니다. 여기서 캐시카우(Cash Cow)란 성숙한 시장에서 큰 투자 없이도 안정적으로 현금을 뽑아내는 사업부를 의미합니다. 전기차 캐즘, 즉 초기 수요 급증 이후 일시적으로 성장이 둔화되는 구간에서도 이 현금 흐름이 하방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다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제가 분할 매수를 결정한 근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A/S 부문의 연간 영업이익률 약 25%, 분기 불문 안정적 현금 창출
- 논캡티브(Non-Captive) 수주액 약 13조 원으로 역대 최대 갱신
- PBR 0.83의 자산가치 대비 극심한 저평가
- 배당 가능 이익 약 28조 원이라는 두꺼운 재무 쿠션
논캡티브 수주란 현대차, 기아를 제외한 외부 완성차 업체로부터 따낸 수주를 의미합니다. 이 수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건 단순히 매출 다변화 이상의 의미입니다.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까다로운 고객사가 현대모비스의 배터리 시스템(BSA)과 섀시 모듈 품질을 인정했다는 독립적인 검증이기 때문입니다.
SDV 전환, 속도가 느리다는 우려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저도 처음엔 솔직히 답답하게 느꼈습니다. 생성형 AI처럼 몇 달 사이에 판이 뒤집히는 업종에 익숙한 사람 입장에서, 자동차 부품 산업의 변화 속도는 너무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단점이 아니라 특성으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현대모비스가 밀고 있는 SDV(Software-Defined Vehicle) 전환의 핵심 인프라는 5G 기반 MTCU입니다. MTCU(Multi-function Telematics Control Unit)란 기존에 차량 지붕에 돌출된 안테나 없이도 5G 통신이 가능하도록 안테나를 제어기 내부에 통합한 장치입니다. 쉽게 말해 차량이 스마트폰처럼 끊임없이 인터넷과 연결되면서 소프트웨어를 무선으로 업데이트받고 자율주행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주는 두뇌 역할을 합니다.
맥킨지앤컴퍼니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약 10%에서 2030년 3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출처: McKinsey & Company). 현대모비스가 연간 R&D 투자를 처음으로 2조 원 이상으로 올린 건 이 흐름에 올라타기 위한 포석입니다.
CES 2026에서 현대모비스가 선보인 M.Vics 7.0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홀로그래픽 윈드쉴드 디스플레이와 18.1인치 가변형 디스플레이를 결합한 이 콕핏 시스템은 콘텐츠 퍼 비히클(Content Per Vehicle), 즉 차 한 대에 탑재되는 부품의 총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의 산물입니다. 차 한 대를 팔 때 현대모비스가 가져가는 몫이 커질수록, 매출 성장 없이도 수익성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로보틱스 신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11.3%를 보유한 현대모비스가 아틀라스(Atlas) 휴머노이드 로봇의 액추에이터를 전담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동차 양산에서 쌓은 정밀 제조 노하우가 로봇 산업에서 재평가받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액추에이터란 전기 신호를 물리적인 움직임으로 변환하는 로봇의 관절 및 근육에 해당하는 핵심 부품입니다. 2026년 말 개발 완료 목표로 진행 중이며,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연간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현대모비스의 공급 물량도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자사주 소각이라는 트리거, 그리고 냉정한 평가
제가 직접 경험한 투자 결과에서 결정적인 변곡점은 2026년 4월 말에 발표된 5,000억 원 규모 자사주 매입 및 전량 소각 결정이었습니다. 보통주 1,129,943주를 취득한 뒤 단 한 주도 남기지 않고 소각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사회 사외이사 5명 전원이 참석해 결의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TSR(Total Shareholder Return), 즉 배당과 주가 상승을 합산한 주주 총수익률 30% 이상을 목표로 내건 중장기 주주 환원 계획이 말뿐이 아니라는 걸 숫자로 증명한 순간이었습니다. 주당 6,500원의 배당까지 더하면, 저는 목표했던 수익률 25%를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달성했습니다.
다만 냉정하게 보면 이 종목이 모든 투자자에게 맞는 것은 아닙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이 연간 약 2,000억 원 규모의 이익 감소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 유럽 전동화 신규 라인의 초기 가동 손실이 분기당 약 300억 원 수준이라는 점은 단기 수익성을 기대하는 투자자에게 노이즈가 됩니다. 실제로 2026년 1분기 영업이익 8,026억 원은 시장 컨센서스 8,430억 원을 하회했습니다.
현대모비스 2026년 2분기 이후 실적 개선의 핵심 변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 AS 부문 관세율이 25%에서 15%로 하향 반영되는 효과
- 북미 HMGMA 공장의 하이브리드(HEV) 양산 본격화
- 유럽향 소형 EV 신차 출시에 따른 제조 부문 흑자 확대
- 스페인 나바라 공장의 폭스바겐 BSA 공급 시작
한국거래소 공시 데이터 기준으로도 현대모비스의 최근 자사주 소각 행보는 국내 대형 제조주 중 가장 일관된 축에 속합니다(출처: 한국거래소).
거대한 장치 산업에서 체질을 바꾸는 일은 스타트업처럼 빠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드웨어 양산 능력과 소프트웨어 기술이 결합되는 시점에서 진입 장벽이 가장 높아진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 종목을 포트폴리오의 주력 공격수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A/S 부문이라는 견고한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천천히 몸값을 올려가는 앵커 자산으로 바라볼 때, 인내심을 시험받지 않고 흔들림 없이 들고 갈 수 있다고 봅니다.
현대모비스가 단기 주가 급등보다는 2028년 이후 로보틱스 공급과 SDV 수주가 본격화되는 국면에서 진정한 재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1분기 실적 발표 자료와 자사주 소각 공시를 직접 확인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숫자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고:
현대모비스 뉴스룸 | 현대모비스 공식 사이트
재무제표 분석 208: 현대모비스, 트럼프 리스크 뚫고 매출 60조 시대 개막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현대모비스 2025년 매출 60조 원 돌파, 역대 최대 실적 달성 | 다나와 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