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에 AI 관련 주식으로 수익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괜히 속이 쓰렸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6년 상반기, 한미반도체에서 약 120%의 수익을 실현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괴로움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테마에 올라탄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기업을 끝까지 신뢰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였습니다.
TC본더 독점 구조와 수익 실현까지의 여정
제가 한미반도체를 처음 진지하게 들여다본 건 주가가 10만 원대 후반 박스권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시장은 엔비디아 실적 서프라이즈에 흥분해 있었고, SK하이닉스의 설비 투자 확대 소식이 연달아 터져 나오던 때였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런 수급 흐름이 겹칠 때가 오히려 진입 타이밍을 잡기 가장 좋은 순간이더군요.
핵심 근거는 TC 본더(Thermal Compression Bonder) 시장의 구조였습니다. TC 본더란 고온과 압력을 동시에 가해 반도체 칩을 나노미터 수준의 정밀도로 접합하는 장비로, HBM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공정 장비입니다. HBM(High Bandwidth Memory)은 여러 장의 D램 다이를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전송 대역폭을 극대화한 메모리로, 쉽게 말해 AI 연산에 필요한 데이터를 엄청난 속도로 처리하기 위해 설계된 메모리입니다. 엔비디아의 블랙웰(Blackwell) 칩에도 이 HBM이 들어가고, 그 HBM을 만드는 데 한미반도체의 TC 본더가 쓰입니다.
한미반도체가 이 시장에서 약 71%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확인했고(출처: 조선일보), HBM3E 12단 이상 고사양 제품에서는 점유율이 90%를 넘는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이 수치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사실상 최첨단 AI용 메모리를 생산하려면 한미반도체 장비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미 완성된 셈이었으니까요.
한미반도체가 이 지위를 쌓을 수 있었던 건 듀얼 헤드 방식의 생산성 덕분이기도 합니다. 듀얼 헤드란 두 개의 본딩 헤드가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로, 기존 싱글 방식 대비 단위 시간당 처리량(Throughput)이 거의 두 배에 달합니다. 메모리 제조사 입장에서는 원가 절감과 납기 단축이 동시에 가능하니, 경쟁사 장비로 굳이 갈아탈 이유가 없는 겁니다. 실제로 마이크론도 한미반도체를 탑 서플라이어(Top Supplier)로 선정하며 대규모 발주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HBM4 세대 전환 시점에서 차세대 장비 수주 가능성을 데이터로 확인한 뒤 비중을 더 늘렸고, 이후 주가가 2026년 2월 말 30만 원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매도해 약 120%의 수익을 실현했습니다. 그때 느낀 건, 좋은 기업을 알아보는 것보다 그것을 끝까지 들고 있는 인내가 훨씬 어렵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종목을 판단할 때 확인했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TC 본더 글로벌 시장 점유율 71%, HBM3E 12단 이상 90% 이상
- 듀얼 헤드 방식으로 경쟁사 대비 생산성 우위 확보
- SK하이닉스·마이크론 양쪽을 동시에 고객으로 확보한 공급망 다변화
- 2024년 영업이익률 45.7%, 2025년에도 43.6% 유지
- 하이브리드 본딩 2세대 장비 2026년 내 출시 예정으로 성장 모멘텀 유지
고밸류에이션의 그늘과 냉정한 리스크 점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익을 실현하고 나서 오히려 더 불안해졌으니까요. 이 종목을 계속 들고 가야 하는지 판단하려고 다시 재무 수치를 뜯어봤을 때, 제가 느낀 건 이 기업의 진짜 위험은 실적이 아니라 밸류에이션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현재 주가는 2026년 예상 실적을 상당 부분 선반영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2025년 매출 5,767억 원, 영업이익 2,514억 원이라는 실적이 확인되었고, 2026년 매출 8,010억 원, 영업이익 4,015억 원이 전망되지만, 이미 시가총액이 35조 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이 수치가 그대로 나온다 해도 주가가 크게 오르기 어려운 구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TSV(Through Silicon Via)라는 기술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TSV란 칩과 칩 사이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전극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HBM 적층의 핵심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한 TC 본딩이 현재 한미반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결국 TC 본더 하나에 매출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는 구조적 약점이 있습니다.
더 냉정하게 보면, 삼성전자와의 관계 설정 문제도 잠재적 변수입니다.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세메스(SEMES)가 TC 본더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고, 삼성전자가 HBM 생산을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외부 장비에만 의존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수직 계열화 리스크는 당장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시장이 조정을 받을 때 악재로 가격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글로벌 OSAT(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 즉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를 외주로 처리하는 위탁 업체 시장도 주목해야 합니다. ASE, Amkor 등 글로벌 1·2위 OSAT 업체들이 AI 칩렛(Chiplet) 패키징 확대로 TC 본더 도입을 늘리고 있는 건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이 시장에서 ASMPT 같은 경쟁사가 마이크론 등을 통해 점유율을 잠식하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반도체 장비 산업의 밸류에이션 흐름은 글로벌 기관도 주시하고 있으며, 한미반도체는 테크인사이츠(TechInsights)가 선정한 세계 10대 반도체 장비 기업 중 국내 유일의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출처: TechInsights). 이 선정 자체가 기술력의 방증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글로벌 경쟁사들의 견제가 거세질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결국 제가 내린 판단은, 이 종목은 장기 보유보다 철저한 분할 매도 전략이 더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하이브리드 본딩(Hybrid Bonding) 기술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는 2029~2030년 전후가 또 다른 기회의 창이 될 수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이란 솔더 범프 없이 구리와 구리를 직접 연결하는 차세대 적층 기술로, 기존 TC 본딩 대비 I/O 단자 수를 수십 배 늘리고 전력 소모를 크게 줄일 수 있는 방식입니다. 한미반도체는 이미 2020년에 1세대 하이브리드 본더를 개발해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이 시장에서도 선발 주자 지위를 노리고 있습니다.
한미반도체가 보여준 성과는 분명히 인상적입니다. 40년간 후공정 장비 하나에만 집중해 온 기업이 AI 시대의 핵심 공급망에 올라선 건 단순한 운이 아니라 기술적 해자의 결과였습니다. 다만 지금 이 주가 수준에서 새로 진입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종목을 다시 살 기회가 온다면, 주가 조정 구간에서 포트폴리오의 일부 비중으로 접근하되, 하이브리드 본딩 양산 시점을 다음 목표로 두는 방식을 취할 생각입니다. 투자 판단은 각자의 리스크 허용 범위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한미반도체 - 나무위키
한미반도체, HBM용 TC본더 시장 점유율 71%로 1위 - 조선일보
최대 실적 거둔 한미반도체…"차기 HBM용 TC본더 출시" - 서울경제
한미반도체, AI 바람 타고 '훨훨'...창사 최대 실적 - 디지털투데이
한미반도체(주) 제품 소개 - 코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