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주가가 몇 달째 박스권에서 횡보할 때 주변에서는 "중공업주는 느리다"고 했지만, 저는 그 기간 동안 오히려 분할 매수로 비중을 꾸준히 늘렸습니다. 결국 체코 원전 수주 소식이 터지고, SMR 협력 발표가 줄을 잇자 주가는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제가 두산에너빌리티를 처음 들여다봤을 때 가장 강하게 끌렸던 건 기술력보다 '타이밍'이었습니다. 에너지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에, 제조 인프라를 실제로 갖춘 기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부터 투자 확신이 생겼습니다.
원자력 수주 모멘텀, 기대와 현실 사이
일반적으로 원전 투자는 '언젠가 오겠지' 하고 10년을 기다리는 산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번 사이클은 속도가 달랐습니다. 체코 두코바니 부지 본계약이 2025년 상반기로 예정된 가운데, 호기당 수주 규모는 약 12조 원 수준으로 과거 UAE 바라카 원전의 호기당 7조 원과 비교하면 약 70% 높아진 수치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여기서 담당하는 역할은 원자로압력용기(RV)와 증기발생기(SG)입니다. RV란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는 원자로 내부를 감싸는 핵심 압력 용기로, 수백 기압의 환경을 견뎌야 하는 고난도 제작물입니다. 이걸 만들 수 있는 기업이 전 세계에 손에 꼽는다는 사실이, 제가 이 종목을 오래 보유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미국 쪽 수요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현재 2050년까지 원전 발전량을 현재의 4배인 400GW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정작 미국 내에서는 지난 30년간 신규 원전을 짓지 않아 제조 인프라가 거의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프로젝트를 통해 폴란드 3기, 불가리아 2기 등 동유럽에서의 수주가 2026년부터 본격화되고, 두산에너빌리티가 주기기 공급사로 자리를 잡아가는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2026~2034년 예상 수주 파이프라인을 보면 팀 코리아(APR1400) 18기, 웨스팅하우스 협력 27기, 국내 APR1400 2기로 총 45기에 달하며 예상 수주액은 79조 원을 웃돕니다(출처: 두산에너빌리티 IR자료).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2026년 1분기 실적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매출액 4조 2,61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7% 늘었고, 영업이익은 63.9% 급증한 2,335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당기순이익도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수주 잔고가 24조 원 수준으로 쌓여 있다는 점은, 앞으로 2~3년간 매출 가시성이 상당히 높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SMR 파운드리 전략, TSMC와 비교하면 어디까지 맞는 말인가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차세대 에너지 대안으로 자주 언급되지만, 막상 "그게 뭔데?"라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SMR이란 출력 300MW 이하의 소형 원전을 공장에서 모듈 방식으로 제작해 현장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기존 대형 원전보다 건설 기간이 짧고 입지 제약이 적다는 게 핵심입니다. AI 데이터센터처럼 대규모 안정 전원이 필요하지만 기존 송전망 인근에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수요처에 특히 적합합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택한 전략은 자체 노형을 개발하지 않고 세계 유수의 SMR 설계사들의 제품을 대신 제작해 주는 파운드리 모델입니다. 파운드리란 반도체 산업에서 TSMC가 그렇듯, 설계는 다른 기업이 하고 제조만 전담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파트너사는 미국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 엑스에너지(X-energy), 테라파워(TerraPower)이며, 특히 아마존이 2039년까지 5GW 규모의 SMR 도입을 위해 엑스에너지와 협력하기로 발표한 것은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서 상당한 수주 기회입니다.
일반적으로 SMR 투자 테마는 아직 상용화 전이라 너무 이르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수주가 실제 매출로 전환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건 맞지만, 2025년 하반기부터 뉴스케일파워의 루마니아(RoPower) 프로젝트와 미국 테네시(TVA) 프로젝트를 위한 기자재 발주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2026년 창원 공장 내 SMR 전용 생산 시설 착공이 예정된 것도 단순한 청사진이 아니라 실행 단계로 넘어가는 신호로 읽힙니다. 뉴스케일파워 78기, 엑스에너지 116기 등 잠재 파이프라인이 현실화되는 속도가 향후 주가의 방향을 결정할 것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 SMR 수주 파이프라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뉴스케일파워(경수로 방식, 77MW): RoPower 6기, TVA 72기 등 총 78기
- 엑스에너지(가스로 방식, 80MW): 아마존 협력 60기 포함 총 116기
- 테라파워(소듐냉각 방식, 345MW): Natrium 실증로 주기기 3종 공급사 선정
- 한국형 i-SMR(177MW): 2036년 실증 반영
가스터빈과 수소터빈, 숨겨진 고수익 구조
저도 처음엔 두산에너빌리티 하면 원전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스터빈 사업의 수익 구조를 들여다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기기 판매 자체보다 이후 20~30년에 걸쳐 이어지는 LTSA(Long-term Service Agreement)가 진짜 캐시카우입니다. LTSA란 가스터빈 제조사가 납품 이후에도 정기적인 부품 교체와 유지보수를 독점적으로 수행하는 장기 서비스 계약으로, 경쟁사가 끼어들기 어렵고 이익률이 높습니다. 기기를 팔수록 서비스 매출이 쌓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지금 수주를 늘리는 것이 5년 뒤 이익률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세계에서 5번째로 대형 가스터빈을 독자 개발한 기업으로, 2023년 김포열병합발전소에서 상업 운전에 성공하며 신뢰성을 입증받았습니다. 이후 보령신복합 등 국내외 누적 6기 수주를 달성했고, 북미 지역에서도 첫 수주를 올리며 글로벌 확장의 첫 발을 뗐습니다. 현재 가스터빈 시장은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전환 중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수소터빈입니다. 2024년 기준 수소 혼소 30% 기술 개발에 성공했으며, 2027년까지 세계 최초의 400MW급 수소 전소 터빈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수소 전소 터빈이란 연소 시 수소만을 연료로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발전 방식으로, 탄소 중립 이후 시대의 핵심 전원으로 꼽힙니다. 글로벌 수소터빈 시장은 2030년 약 4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출처: 두산에너빌리티 IR자료).
제 경험상 이 종목의 가장 불편한 점은, 수익 구조 자체는 매력적인데 주가가 외부 이벤트 하나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체코 협상 일정이 밀린다거나, 정치적 변수로 수주가 지연된다는 뉴스 한 줄에 주가가 며칠 만에 크게 흔들립니다. 평소 변동성이 낮은 종목을 선호하는 저로서는, 이 종목이 '몸에 맞지 않는 무거운 옷'처럼 느껴질 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결국 두산에너빌리티는 거시적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올라탄 기업이지만, 그 흐름이 실적으로 전환되는 속도와 정치적 변수는 개인 투자자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 종목에 접근한다면, 단기 차익보다는 수주 잔고와 원전 계약 진행 상황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비중을 조절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맞을 것입니다. 2026년 체코 본계약과 SMR 전용 공장 착공이라는 두 가지 이벤트가 실제로 완료되는 시점이 투자자 입장에서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두산에너빌리티 - 미래에셋증권, 4월 29, 2026에 액세스, https://securities.miraeasset.com/bbs/download/2141595.pdf?attachmentId=2141595
두산에너빌리티 - 투자자 설명자료 - Doosan Enerbility, 4월 29, 2026에 액세스, https://www.doosanenerbility.com/kr/investment/ir/down/435
두산에너빌리티 - (034020), 4월 29, 2026에 액세스, https://file.alphasquare.co.kr/media/pdfs/company-report/_19071709-034020.pdf
ENERGY TOWARD SUSTAINABILITY - Doosan Enerbility, 4월 29, 2026에 액세스, https://www.doosanenerbility.com/heavy_file/management/data/overview_result/report/2025_report_kr.pdf?v=1
[2025 해상풍력 공급망 컨퍼런스 전시회] 두산에너빌리티 - 일렉트릭파워, 4월 29, 2026에 액세스, https://epj.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