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하반기, 고려아연 주식을 처음 분할 매수하던 날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때라 주변에선 "왜 굳이 저 난리통에 들어가느냐"는 말을 들었는데, 저는 오히려 그 분쟁이 만들어낸 변동성을 기회로 읽었습니다. 50대에 접어들어 안정을 추구해야 할 시점이었지만, 제가 분석한 고려아연은 단순한 고위험 종목이 아니었습니다.
아연을 캐는 회사가 배터리 소재 기업이 되는 과정
솔직히 처음엔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1974년 설립 이후 50년 가까이 아연과 납을 녹여온 회사가 이차전지 밸류체인(battery value chain)에 진입한다는 게 쉽게 그려지지 않았거든요. 여기서 이차전지 밸류체인이란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 전구체, 니켈 등 원재료부터 완성된 배터리 셀까지 이어지는 생산 단계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온산제련소의 공정을 실제로 들여다보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고려아연의 제련 방식은 아연 정광을 처리하면서 나오는 부산물을 납 제련의 원료로 재사용하고, 거기서 또 금, 은, 구리, 인듐을 뽑아내는 이른바 폐쇄 루프(Closed-loop) 시스템입니다. 여기서 폐쇄 루프란 원료가 공정 안에서 순환하며 버려지는 것이 거의 없는 구조를 말합니다. 이 방식이 가능한 회사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그 자체가 이미 거대한 기술적 해자였습니다.
이 제련 기술의 연장선이 바로 '트로이카 드라이브'입니다.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세 가지 신사업 축, 즉 이차전지 소재와 신재생에너지·그린수소, 그리고 자원 순환을 묶어 부르는 전략 이름입니다. 제가 특히 주목한 건 이차전지 소재 파트였는데, 자회사 한국전구체를 통해 하이니켈 전구체를 양산하고, 2026년 말 준공 예정인 올인원 니켈 제련소가 가동되면 2029년까지 연간 11만 톤의 니켈 생산이 가능해집니다. 전구체(precursor)란 배터리 양극재의 중간 원료로, 리튬과 결합하기 전 단계의 물질입니다.
2026년 1분기 연결 영업이익은 6,254억 원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시장 예상치를 약 25% 웃도는 수치였습니다. 주된 이유는 은 가격의 급등이었습니다. 고려아연은 아연과 납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연간 2,000톤 이상의 은을 부산물로 생산합니다. 은 가격이 온스당 1달러 오를 때마다 연간 영업이익이 100억 원 이상 늘어나는 구조인데, 2026년 초 은 가격이 80달러를 위협하며 강세를 보였으니 제가 분할 매수를 결정한 타이밍이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2026년 아연 벤치마크 TC(Treatment Charge)는 톤당 85달러로 타결되었습니다. TC란 제련업체가 광산업체로부터 정광을 처리해주는 대가로 받는 수수료인데, 쉽게 말해 제련소의 기본 수입입니다. 전년도 사상 최저치인 80달러에서 반등했다는 사실은 고려아연의 협상력이 그대로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였습니다.
고려아연의 현재 수익 구조를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TC 반등으로 인한 기본 수수료 수익 회복
- 은·금 가격 랠리가 만들어내는 메탈 게인(Metal Gain) 증가
- 수출 비중이 높은 제련업 특성상 고환율 국면의 환차익 효과
- 반도체 웨이퍼 세정에 쓰이는 고순도 황산의 수요 증가
이 네 가지 변수가 2026년 상반기에 동시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증권업계에서도 "전무후무한 우호 국면"이라고 표현할 만큼 이례적인 상황이었습니다(출처: DB금융투자).
경영권 분쟁이 남긴 것, 그리고 제 투자의 한계
제 경험상 이런 종목은 보통 두 가지 부류의 투자자를 끌어들입니다. 하나는 분쟁 자체를 재료로 삼는 단기 트레이더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 가치를 보고 들어온 중장기 투자자입니다. 저는 후자를 자처했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익이 나기 시작하니 저도 모르게 단기 수익률에 집중하고 있었거든요.
2024년 9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영풍과 손잡고 공개매수(Tender Offer)를 선언하며 전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공개매수란 특정 주주가 다수의 주식을 일시에 매입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매수 의사를 밝히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에 최윤범 회장 측은 베인캐피탈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고 자사주 대항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맞불 전략을 펼쳤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크루서블 JV(Crucible JV)였습니다. 고려아연이 미국 내 제련소 건설을 위한 합작법인에 3조 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하면서, 미국 정부 관련 기관이 참여한 우호 주주를 단숨에 10% 이상 확보했습니다. 법원도 이 신주 발행이 경영권 방어만이 아닌 정당한 사업 목적이 있다고 판단해 영풍-MBK 측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2026년 3월 주주총회에서 최윤범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은 62.98%의 찬성으로 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사회 구도가 11대 4에서 9대 5로 좁혀진 것은 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최 회장 재선임안에 '미행사' 결정을 내린 것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은 이후 주주총회에서도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저는 이 시점에서 분할 익절을 단행했습니다. 설정해둔 목표 수익률에 도달했고, 한편으로는 제 투자의 성격을 냉정하게 돌아봤기 때문입니다. 이 수익이 고려아연의 본질적 성장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경영권 분쟁이 만들어낸 수급 불균형에서 온 것인지를 분리해서 생각해보니 후자의 비중이 무시하기 어려웠습니다.
50대 투자자로서 자산의 수성과 안정적 성장을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고변동성 종목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건 아니었는지 하는 물음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밸류에이션(Valuation), 즉 기업의 현재 가격이 내재 가치 대비 얼마나 적절한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보면, 2026년 예상 EPS(주당순이익) 65,142원 기준 포워드 PER(주가수익비율)은 약 29배로 과거 10배 내외에 비해 확연히 높아졌습니다. 이 멀티플이 이차전지 소재 기업으로서의 재평가를 반영한 것이라면 납득할 수 있지만, 분쟁 프리미엄이 녹아있다면 언제든 되돌려질 수 있다는 리스크를 외면해선 안 됩니다.
결국 고려아연은 기술적 경쟁력과 미래 사업 확장성 모두 진짜인 회사입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온전히 취하려면 경영권 분쟁이 실질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을 확인하고 진입하거나, 트로이카 드라이브의 실적이 숫자로 검증되는 단계를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이번 경험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올바른 기업'과 '지금 당장 올바른 투자'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니켈 제련소 준공 시점과 이후 수율 달성 여부를 꼭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반드시 본인의 기준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고:
고려아연 핵심 기업분석 2026년 상반기 - 자소설닷컴